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 "국가주의서 자유주의로 '레짐 체인지' 필요하다"

입력 2023-06-13 18:30   수정 2023-09-21 09:15


과거 이야기부터 해보자. 조선을 두고 흔히 당쟁과 세도정치 등으로 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물어보자. 그런 일이 없었다면 조선은 온전한 나라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유감스럽지만 아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해도 그 후기와 말기의 모습은 외국인 방문객들이 본 ‘초라하고 가엾은 나라’였을 것이다.

문제는 세습 왕정이었다. 세습 왕정은 국가가 다룰 문제가 적고 단순한, 이를테면 농경사회 같은 데서나 가능한 체제다. 상공업의 발달 등으로 복잡한 문제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존립하기 어렵다. 세 살짜리가 왕이 되기도 하고, 주요 의사결정 공직이 특정 계급의 소유물이 되는 체제에서 어떻게 국가 존립과 발전을 위한 결정을 할 수 있겠나. 세상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 한계는 뚜렷해진다.

오늘날까지도 세습 왕정을 유지하는 나라가 있기는 하다. 자원이 풍부해 정책 역량과 관계없이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중동국가가 그 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세습 왕정 또는 세습 체제는 일찍이 조선 중기부터 그 수명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은 이 수명 다한 체제를 끝까지 유지했다. 단순한 정치 체제로서의 의미를 넘어 윤리와 도덕의 기준이 되고 심지어 종교적 가치까지 부여받은, 이른바 레짐(regime)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쉽게 의문을 가질 수 없었으며, 이의 제기나 대안 제시는 곧 멸문 멸족이었다.

제대로 기능하지도 죽어 사라지지도 않는 ‘좀비’ 같은 레짐, 그 속에서 나라는 엉망이 돼갔다. 안되는 집안에 싸움은 더 많은 법. 망국의 원인이라는 당쟁이나 세도정치도 그 필연적 결과로 생겨났다. 그러다 뒤늦게나마 막부 세습 체제를 청산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조선이 그러했듯 오늘날에도 우리의 발목을 잡는 레짐이 있다. 국가주의 레짐, 즉 국가 권력이 이곳저곳 과도하게 개입하는 체제와 이를 당연히 여기는 인식과 관념, 그리고 문화가 그것이다.
"시장이 해결할 일까지 국가 개입…규제만능 낡은 틀 벗어나라"
교육만 해도 교사자격·교과과정·방식까지 통제
국가주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선 500년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 이후의 역사가 줄곧 그랬다. 물론 민주화 이후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 한때 머리 길이와 치마 길이까지 국가가 규제하지 않았는가. 그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는 훨씬 자유롭다.

그러나 국가주의는 여전히 강하다. 일례로 교육부문을 보자. 국가기구인 교육부가 교사 자격은 물론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등 모든 것을 규제한다. 그 결과 교육의 다양성과 혁신성은 뚝 떨어져 있다.

세계교육장관회의에서 가장 모범적인 미래교육으로 선정되고, 주요 언론이 세계적 혁신교육으로 소개하고 있는 슈타이너(Steiner) 교육이 있다. 학생은 행복해하고, 학부모도 만족하는 교육으로 한국에도 들어와 있다. 하지만 학교로 인정받지 못한 채 대안학교로 있다. 교사 채용부터 교육의 내용과 방법 등이 교육부 기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학교로 인정받지 못하니 시설비와 인건비 등 모든 비용을 학부모가 부담해야 한다. 그 결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이들만 이 학교에 다닐 수 있다. 교육의 다양성과 혁신성을 이렇게 죽이고도 우리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까.

교육뿐만 아니다. 주주와 투자자 그리고 채권자 등이 책임질 일을 검찰에 먼저 책임지게 하는 과도한 배임죄 조항, 지방정부나 지역주민의 자기책임에 맡겨야 할 사안을 중앙정부 관료가 통제하는 말뿐인 지방자치, 다른 나라가 2~3년이면 지을 반도체 공장을 7~8년 걸리게 하는 토지이용 규제와 산업 규제 등 그야말로 끝이 없다.

문제는 이 모든 것에 우리 모두 익숙해져 있고, 그래서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시민사회와 시장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일에도 국가가 당연한 듯 나서고 있다. 단순한 법과 제도 또는 체제로서의 의미를 넘고 있다는 말인데, 그래서 이를 레짐이라 부르는 것이다.
작동하지 않는 국가
국가주의 문제는 국가기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가 된다. 규제하고 감독하고 감시하고 승인하고 지시하고 처벌하고, 또 이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끝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큰 칼을 옆구리에 차고 있지만, 이 칼을 제대로 들어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먼저 가장 중요한 국가기구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을 보자. 힘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폭넓은 인사권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기업 경영활동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필요한 힘은 그런 힘이 아니다. 산업구조 조정과 노동개혁을 하고, 연금개혁과 금융개혁 그리고 인력양성체제 개혁 등을 할 수 있는 그런 힘이 필요하다. 그런 힘이 과연 있을까?

산업 구조조정만 해도 그렇다. 과거 같으면 “너는 반도체 하라, 너는 조선 하라”고 강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실 비서관이나 행정관이 기업에 건 전화 한 통이 ‘게이트’가 된다. 게다가 사안마다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상황 속에서 법 하나 제·개정하는 데 평균 3년 안팎이 걸린다. 할 수 있는 일이 뭐 그리 많겠는가.

국회가 지닌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심의하고 대립하고 그러다 보면 본질적으로 의사결정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신속성과 전문성을 요하는 문제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세상에서는 그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흔히 국회 권한을 강화해 그 기능을 살려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할수록 국정은 더 큰 혼란에 빠진다. ‘물갈이’ 어쩌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의원이 된다고 해도 국회가 지닌 이런 한계는 벗어날 수 없다.

다른 나라는 의회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하거나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조합주의 기구 또는 독립규제위원회 등을 활용하며 이런 문제를 완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은 지방분권은 나라를 망친다는 국가주의적 사고가, 또 국정은 오로지 선출직이나 임명직 공직자가 그 중심을 이뤄야 한다는, 또 다른 국가주의적 사고가 그 길을 막고 있다.

관료기구 또한 그 한계가 분명하다. 장기집권의 권위주의 정권이 주던 보호막이 사라진 지금, 관료에게는 법령과 규정 등이 다 지뢰밭이다. 지뢰밭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상책, 복지부동이나 보신주의가 보편적 문화로 자리 잡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잘 풀리지 않는 집안일수록 말썽도 많고 싸움도 잦다. 어차피 일은 안 되게 돼 있는 상황이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은 서로 삿대질하며 대중을 선동하고, 국가재정을 뿌리며 매표행위를 한다. 또 신분이 보장된 관료는 책임을 회피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자유주의의 문제
결론은 하나다. 시장과 시민사회가 이렇게 성장한 상황에서 국가는 그 권력과 권한을 줄여야 한다. 시장과 공동체, 그 구성원인 개인과 기업 그리고 다양한 조직이 더 큰 자유를 누리게 해야 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자율적 질서가 나라 중심이 되게 해야 한다.

국가의 역할이 필요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안보 안전 복지 환경 경제 외교 등 국가 역할을 더 키워야 할 부분도 많다. 주요 국가가 보호주의적 입장을 강화하고 있는 터라 더욱 그렇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과도하다. 시장과 시민사회, 그리고 그 구성원의 자율에 맡겨야 할 사안까지 국가가 개입하고 있다는 말이다.

애덤 스미스,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자유주의자의 주장을 말하는 것이냐고 물을 수 있다. 대체로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과 국민 특성을 생각해 두 가지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첫째, 정의와 공정 그리고 상식과 같은 가치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심한 빈부격차로 경제적 정의가 무너지고, 귀족노조에 의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무너지고, 어디서 태어나 자라느냐에 따라 기회와 소유자산 크기가 달라지는 지역 간 불균형의 세상. 이런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세상에서 제대로 된 자유주의가 자랄 수 없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무엇을 먹고 자라는지를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당연히 국가기구는 소득 재분배와 지역균형발전 그리고 노동개혁 등의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 시장 주체로서의 기업 또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SV(기업의 공유가치 창출) 등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정의와 공정 그리고 상식의 담론이 없는 자유주의는 옳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둘째, 우리 모두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우리 국민은 높은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성공을 향한 열정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다. 금모으기 운동 등에서 보듯 공동선 의식도 높다. 자유를 누릴 자격이 충분하고, 자율적 질서를 만들어낼 자질과 역량 또한 충분하다는 말이다.

사실 국가주의 레짐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먹고 자란다. 사납고 무지하고 나태하고. 그래서 국가가 규제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 때의 일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먹는 방송(먹방)을 보면 너도나도 마구잡이로 먹어 건강을 해치니 국가가 이 방송을 규제해야 한다고 덤볐다. 우리 국민을 그런 ‘바보’로 보는 시각, 이런 자기 폄하가 국가주의를 부른다.
앙시앵 레짐에서 누보 레짐으로
동인, 서인, 안동김씨, 풍양조씨, 누가 정권을 잡든 조선의 역사는 망국을 향해 흘렀다. 백성의 삶 또한 점점 더 피폐해졌다. 근본 모순으로서의 세습왕조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 국정도 그렇다. 우리가 겪는 많은 혼란과 어려움은 사람의 문제나 정당의 문제가 아니다. 즉 대통령이 바뀌고 국회의원이 바뀐다고 해서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같은 질문만 되풀이해 왔다. 누가 대통령이 돼야 하고, 어느 당이 집권해야 하고, 어떤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야 하는지 따위다.

나름 의미있는 질문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질문은 그 이상이어야 한다. 국가의 역할과 기능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어떻게 하면 시장과 시민사회를 자유롭게 하고, 그래서 우리 국민의 높은 혁신 역량과 공동선 의식이 살아날 수 있게 할 것인지 등을 물어야 한다. 앙시앵(ancient) 레짐으로서의 국가주의를 벗어나 합리적 자유주의의 누보(nouveau), 즉 새로운 레짐으로의 길을 열어야 한다.

마침 윤석열 정부가 자유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규제완화, 지방분권, 교육에서의 선택권 강화 등 시장과 시민사회의 역할을 키워나갈 것을 천명하고 있다. 또 노동시장의 불공정과 지역 불균형의 비상식 등을 바로잡겠다고 한다. 정부로서는 쉽게 입에 올리기 힘든 말이지만 레짐 체인지, 즉 자유주의 레짐으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듯하다. 새 정부의 이런 구상과 노력이 국가주의 속에 성장한 시대착오적 시각과 문화 그리고 잘못된 정치적 관행과 공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볼 일이다.

■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은

△1954년 경북 고령 출생
△1972년 대구상고 졸업
△1976년 영남대 정치학과 졸업
△1979년 한국외국어대 정치학 석사
△1984년 미국 델라웨어대 정치학 박사
△1986~2018년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2004~2006년 청와대 정책실장
△2018∼2019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2021년 제20대 대통령선거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거대책위원장
△2023년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직무대행, 제11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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